오 간만에 재미난 영화를 보았다.
늘 배트맨 시리즈는 나에게 실망을 주었다.
그것도 아주 큰 실망을
그정도 주연에 그정도 돈을 투자해 고작만드는 영화는
초등학생 수준의 SF에, 부족한 상상력
거기다 어설픈 설정과 시나리오들.
정말 누가봐도 슈퍼히어로 보다는
제임스본드를 흉내내고 전작의 아류를 자처하는 영화들밖에 되지 못했다.
정말 배트맨 시리즈를 돈내고 본다는 것은
나에겐 상처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영화를 다운받아서 보게되었다.
별 생각없이 틀은 영화는 전반 1시간 가량은 비몽사몽.
하지만 크리스천 베일의 슬픔과 암담함이 전해지면서
왜 그가 배트맨이 되었는지
그리고 왜 공포를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알게되면서
영화는 헐리우드식의 빈껍데기 돈많은 영화가 아닌
속이 꽉찬 호빵같은 영화로 변하게 된다.
거기에 마이클 케인의 감초연기, 충직하면서도 웃겨야 하고
그러면서 모든 비밀을 연결시키는 역할에 서야하는
한마디로 노련하고 익숙한 대사를 쳐야하는 역할에서 그는 거의 완벽한 역할을 해준다.
흡사 대장금에서 임현식이 빠지면 일방적인 영웅이야기라 지루해 지듯이..
두번째로 스승이며 친구이자 배신자인 니암 리슨의 연기로
그에게 삶을 부여하고,
공포를 극복하고,
악과 자신을 구별할 수 있는 지위가 주어지는 장면에서는
이전 의미없는 배트맨들과의 차별이 이루어져 안도의 한숨까지 나오게 되었다.
고든 경감역의 게리올드만 역시 그가 악역이 아니라 착한 역을 맡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고
그러면서도 제 역할과 과장되지 않은 연기에서
일순 공포, 스릴러로만 흐르는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어 영웅영화로서
시원한 한방을 터뜨려주는 역할도 잊지 않고 있다.
모건 프리먼의 지적인 대사가 오가고
'나이트호크', '블레이드 러너'의 주인공 룻거 하우어의 거만한 연기는
얼마나 조연들이 살아 연기하는가를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런 훌륭한 조연들이 영화의 곳곳에서 관중들의 시선을 집중시켜주고
배트맨 나름의 공포와 스릴러를 액션과 연결시킴으로써
완벽하게 새로운 배트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설마하고 살펴본 크레딧에는 역시 그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이전 '메멘토'에서 얼마나 저예산으로 얼마나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나 를 보여준
명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아메리칸 사이코에서 명연기를 보여준 크리스천 베일이
주연을 맡았다니.. 과연 대단한 작품이다.
크리스토퍼 감독이 이런 최고의 찬사를 받는 이유는
관객을 가만히 두지 않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화를 거치면서 관객은 노련해질대로 노련해졌다.
어설픈 드라마나 대의명분없는 파괴, 영웅의식은 결국
폭력을 처리하기 위해 폭력을 앞세우는 미국의 정신과 연결되어
너무나 얄팍한 헐리우드 영화가 되어버리는 것을 알고 있기에
감독은 배트맨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관객을 잠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이전 '메멘토'에선 기억력 10분이라는 기발한 발상으로
관객을 추리의 세계에 빠뜨리고 빠른 편집과 액션으로 쉴 시간을 안주고
'인섬니아'와 이번 '배트맨 비긴즈'에서는 왜 배트맨이 될 수 밖에 없었는가와
배트맨이 왜 슈퍼맨처럼 얼굴을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밤에만 싸돌아다니는 가를
정확하게 짚어준다.
이처럼 감독은 확실한 대본을 기반으로 크리스천 베일에게 배트맨이란 생명을 부여하고
관객에게 그의 역할을 분석할 시간을 주며
이전의 스릴러물처럼 빠르고 스펙터클한 장면을 통해
볼거리를 시원하게 제공한다.
아쉬운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팀버튼이 만들고 조엘 슈마허가 말아먹은 시리즈를 다시 원래의 이름으로 복귀시켰다는
점에서 나는 배트맨 비긴즈에 최고의 점수를 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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